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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칭찬 상세내용 게시판
작성자 황정근 작성일 2018-10-18
담당부서
제 목 【共感 고객수기공모 】 에 " 응모" - 역사 탐방을 다녀와서-
내 용

나는 오늘 서구노인문화센터의 역사교육프로그램의 현장교육으로 우리나라에서 면적기준으로
4번째로 큰섬 강화도를 다녀 왔다.
강화도는 인천 사람이라면 몇번씩은 다녀왔을거라 생각하고 나도 몇십번 다녀왔던 터라
강화는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역사 탐험교육으로 역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제껏 겉만
보고 강화를 제대로 알지도 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에 고개가 절로 숙여 졌다.
강화도를 왜 지붕없는 박물관이라고 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강화가 오래 전에는 몽골의 침략을
피해 고려가 39년동안 수도로 삼았고, 근대 조선이 쇄국정책에서 개방의 문호를 열때
엄청난 외국의 침략에 고통을 당했고 불공평한 강화도 조약을 맺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강화를 향해 달려가는 차 속에서 역사선생님의 역사 강의가 시작된다.
강화라는 이름은 무슨 의미 일까 ? "두 갈래로 갈라진 강아래에 있는 아름다운고을" 이란다
(* 여기서 말하는 두갈래의 강은 한강과 임진강을 의미한단다.)
또한 강화와 김포를 사이에 둔 좁은 해협은 바다라는 개념보다는 짠 하천이라는 뜻의 염하 (鹽河)
라고 한다는 것도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초지대교를 건너서 제일 처음 맞이하는 초지진. 강화에서 맨 처음 으로 설립된 진이며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등 여러나라의 군대를 맞아 싸운 곳이란걸 알게 됐다.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푸른 소나무에는 총탄의 자국이 남아있고 성벽에도 자국이 있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소나무는 우리 한민족의 끈질긴 민족성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우리의 두번째 목적지는 광성보이다. 보 안에는 손돌목돈대, 용두돈대, 광성돈대 가 있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사력을 다해 싸운 우리의 전투 요새 였다.
특히 신미양요때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미군을 맞아 처절한 전투를 벌여서 미군 3명 희생에
우리군 350여명이 목숨을 잃은 전투지 였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다.
처절한 조선과의 전투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군대장이 전쟁이 끝나고 뒷 수습과정에서
너무도 보잘것 없는 무기로 이렇게 사력을 다해 적군을 막아 싸울수 있는 민족은 조선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리 병사들의 애국심과 강인함에 감탄했다는 기록은 우리의 자부심이요,
조상님에게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며 나 자신을 돌아 보게 만드는 시간이다.
손돌목 이란 이름에는 슬픈 사연도 있었다.
후금의 침략을 피해서 강화도로 피난하던 왕을 손돌이 안내를 맡았다.
강화도로 가는 뱃길은 험했다. 급한 물살과 그에 따라 뒤집힐것 같은 배에 임금은 불안 했지만
손돌은 태연히 노를 저어 점점 더 험한 물살의 가운데로 배를 몰아 갔다. 임금은 속으로 이놈이
날 죽일려고 한다 생각 하고 손돌을 죽이라 명 했다.
손돌은 죽기전에 " 제가 띄우는 바가지가 흘러가는 곳으로 배를 몰고 가십시요 그러면
배가 안전하게 강화도에 도착할것입니다" 손돌의 말대로 배를 몰아 무사히 강화에 도착했는데
배가 도착하자 마자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물길은 점점 더 험악해 졌습니다. 임금은 손돌을
의심한 자신의 잘못을 알고 손돌을 후하게 장사 지내주라는 명을 내렸다. 지금 광성보와
마주보는 김포 덕진진에 손돌의 무덤이 있다. 그리고 손돌목이라는 지명도 내렸다.
금강산도 식후경, 맛 있는 점심을 먹고 다음 행선지인 고려 궁지로 향했다.
39년간이나 고려의 수도 궁궐터지만 지금은 고려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조선시대의 외규장각,
간판만이 우리를 맞이 했다. 흔적이 남았다면 뒷산 이름이 "송악산" 이라는 이름이 있을뿐이다.
우리팀 뿐이 아닌 다른 방문팀이 많아 해설사님들의 해설
경쟁터 같기도 했다. 역사를 몸으로 배우는 사람이 많다는걸 새삼 느낀다.
다음은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 강화의 역사를 한곳에 모아 놓은 역사박물관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인돌은 현재 보존 공사를 위해서 사방으로 가림막을 쳐서 제대로
볼수는 없었지만 바둑판 모양의 이런고인돌 무덤을 가질수 있는 사람의 신분이나 재산은
어느 정도 일까하고 엉뚱한 생각을 잠시동안 해 보았다.
역사 박물관에 들어서니 단체로 왔다고 문화해설사님이 몇가지 질문을 하시고 많이 알고
있다고 칭찬을 하시는데 해설을 간략히해도 30분이상이 걸린다고 하신다.
우리 일정이 빠듯해서 해설사님의 간략한 해설로써 대신하고 역사 선생님의 껌딱지가 되어
진열품들을 감상했다.
광성보에서 미군과 전쟁하는 모습을 재현해서 만들어 놓은 언덕과 전투장면은 새롭게
다가 왔다. 전리품으로 미군이 가져 갔다 영구 임대 형태로 돌아온 수자기(帥字旗) 안내판을 보았다.
처음에는 안내판에는 있는데 전시 물건이 없어서 어리둥절해서 찾아보는데 바로 눈앞에
천정에서 부터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바보 스러움을 다시금 느꼈다.
보고 싶은 것은 한이 없겠지만 돌아 오는 차 안에서 간단한 퀴즈로 나는 선물을 받았다.
외규장각은 어느 임금님때 만들어진 것이냐는 질문에 정조대왕이라고 대답한 덕이다.
전리품이란 핑계로 프랑스로 가져간 우리의 소중한 기록 서적을 찾아내기 위해 평생을 몸바쳐
찾아내신 " 박동선 박사님 "
임대 형식으로 나마 영구히 조국땅으로 돌아올수 있게 해 주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 서적들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으니……
아쉬운 하루의 현장 교육이었지만 역사박물관의 해설사님의 말씀이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다.
역사는 현장을 걸으면서 배우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말씀, 오늘 진짜로 공감하고 왔다.
또한 강화는 아픈 기억이 서린 곳이며 불평등한 조약을 맺은 땅으로도 기억해 달라신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신 센터장님 과 전 직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또한 종일토록
해설에, 퀴즈로 온몸을 불태우신 역사 정춘희 선생님께 충심으로 고마움을 표 합니다.
이런 기회가 더 많아져서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알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